첫 눈의 소나타

발단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마누마는 손에 들린 티켓을 한참 쳐다봤다.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초청 티켓. 치사카가 한 번씩 유튜브를 통해 영상을 돌려보기도 하는 관현악단의 공연이었다. 아무래도 연말을 맞이해서 새해가 오기 전에 소중한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한, 그런 기획 공연일 터. 아마누마는 한참 티켓을 방 천장의 전등 불빛에 비춰보았다. 티켓은 왜인지 개수도 애매하게 두 장. 사실 티켓 자체는 받은 지 좀 된 거였다. 공연 일정은 불과 3일 남짓. 과제 때문에 들렀던 신생 카페에 홧김으로 이벤트 응모를 한다는 게 덜컥 당첨이 돼버렸다. 카페는 레코드 음반을 같이 대여해주는 특이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그탓에 과제 수행하기에 적합한 장소로 누가 추천해 조원들이랑 들른 게 불과 이주 전이다.

-어, 이거 유명한 공연이잖아. 자, 종이 나눠줄테니까 다들 써요.

원래 성격이라면 한 번 흘려보고 말텐데, 적극적인 조원이 당첨될지 누가 아냐며 다들 쓰라고 오지랖을 부리는 터에 아마누마도 등 떠밀려 반강제로 이벤트를 응모한 것이지만. 왜인지 일주일 전에 낯선 번호로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며 연락이 왔었다. 물론 처음에는 스팸이나 신종 사기인 줄 알았으나, 메시지에 같이 첨부된 사진을 보고선 그때 기억이 떠올라 티켓까지 수령한 참이었다.

사실은 티켓을 받자마자 치사카 케이가 생각났었다. 하지만 연락을 보내는 건 다른 문제였다. 아마누마는 핸드폰에 라인을 켜 뻔히 적힌 치사카의 대화창을 한참 쳐다봤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별생각 없이 티켓을 얻었는데 보러가지 않겠냐고 연락 했을 테지만…, 문제는 치사카의 요즘 상태가 평소 같지 않다는 데에 있었다. 최근 과제 하나가 골머리를 썩이는 탓인지, 아니면 작업 중 하나가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인지. 담당 교수님에게도 자주 불려가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치사카의 표정은 뭐랄까,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불쾌해하는 기색이 잦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것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는, 유독 요즘따라 더 예민해 보이는 태도였다. 그래서 연락하기가 꺼려지는 탓이다. 치사카와 부딪히게 될 것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극도로 무언가에 고민하고 몰두하는 상황 자체가 치사카에게는 낯설고 스트레스 받는 일임을 알아서. 그도 그럴게, 주목 받는 입장이 얼마나 힘든지 아마누마 그녀도 잘 알지 않는가. 그럴 땐 주변의 걱정이나 관심이 더욱 힘들었다. 적어도 본인은 그랬었다.

아마누마는 연신 라인 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문구를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있잖아, 공짜 티켓이 생겼어. 보러가지 않으면 손해 아니야? 라고 썼다가, 너 이 오케스트라 좋아하지 않았나. 나 티켓이, 까지 썼다가. 결국 남은 문장은 너 이날 시간 돼? 공연 보러 갈래? 이 두 문장이 전부였다. 그것마저도 아마누마는 한참을 바라 봤다가 연습할 시간이나 과제할 시간을 괜히 뺏는 건가, 좀 부담스러우려나, 그런 생각에 지우려는 참이었다. 그러니까, 정말로 지울 생각이었다.

₁17:50시간 되면 공연 보러 갈래?

그러니까, 발단은 아주 사소한, 실수에서 시작된 것이다.

아마누마는 물론 라인을 보낸 것을 5초 동안은 자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옆에 선명히 찍힌 1을 보고서는 도저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짤막한 비명과 함께 자리에서 펄쩍 뛰어버린 것은 덤이었다. 황급하게 잘못 보낸 것이라고 뭐라도 보내려던 찰나, 1은 재빠르게 사라져버렸다.

그래.17:55

일정이 언젠데?17:56

날짜 비워두게. 답은 그녀의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아마누마는 메시지의 답장을 한참 보며 눈을 깜빡이다가 언제 질색팔색 했냐는 듯, 손가락을 놀려 티켓에 적힌 날짜와 장소를 적어 보냈다. 그녀의 기나긴 고민이 언제나처럼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구분선]

공연은 아무래도 3일 밖에 남지 않았던 터라 금방 다가왔다. 치사카와 아마누마는 공연장 근처의 개찰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3번 출구. 연말답게 인파는 많았고 다들 공연 소식을 들은 것인지 애초부터 오케스트라 얘기를 하며 전철을 타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아마누마는 빨개진 뺨을 손바닥으로 대충 슥 문지르며 지하철에 티켓을 밀어넣고 출구를 막 빠져나왔다. 많은 인파들 틈, 그 사이에서 빠져나오던 아마누마는 이윽고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치사카를 바라봤다. 그 순간 그도 숙인 고개를 들었다. 시선의 마주침은 늘 의도치 않았다. 지금처럼. 아마누마는 잠깐 손을 꿈지럭거리다가, 어색하게 들어 치사카를 향해 흔들었다.

“금방 왔네, 아까…, 막 전철을 탔다고 하지 않았었나.”

“뭐,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아, 악기점? 이 근처…였던가.”

“어, 베이스 때문에. 사장님이 한 번 들러서 상태 좀 보자고 했었거든.”

저번 만남에서는 또 사소한 것 때문에 살짝 말이 엇나갔었는데, 만나서 얘기하니 처음이 조금 어려웠지 근황들은 의외로 쉽게 흘러나왔다. 아마누마는 치사카와 함께 할 땐 항상 이랬다. 그냥, 이것저것 사소한 것을 말하다 보면 의도치 않은 근황과 속마음마저 흘러나왔다. 늘 거리낌이 없어졌다. 그래도 될 것만 같았다. 항상, 어쩌면 언제까지고.

공연장은 근처였다. 큰 오페라 하우스를 빌린 듯이 변두리에 있는 건물 하나가 멀리서 어둑한 와중에도 반짝이고 있었다. 잘 조성된 공원과 거리를 드문드문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대감과 함께 말소리를 흘리며 건너갔다. 그리고 그들의 행렬을 뒤따라 아마누마와 치사카도 천천히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아, 추워.”

“응, 근데 막상 들어오니까 또 덥네….”

아마누마는 그렇게 얘기하며 꼼꼼하게도 둘렀던 머플러를 천천히 풀어 팔목에다 걸었다. 흘러내리는 크로스 백의 끈을 고쳐메면서 카운터를 슥 둘러봤다. 하우스의 천장은 드높았고 평소에도 공연을 하는 큰 공간답게 여러 사람들의 말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샹들리에의 밝은 불빛 아래 티켓을 확인하고 사람들을 공연장으로 안내하는 직원이 아마누마를 보더니 작게 고개를 주억이며 눈인사를 건넸다. 아마누마는 어색하게 잠시 멈추었다가, 핸드폰 화면의 티켓 번호를 여러 번 훑고서 직원에게 다가가 화면을 들이밀었다.

“네, 아마누마 님, 치사카 님, F열 6석, 7석 확인 되셨습니다. 안쪽으로 안내에 따라 입장해주세요.”

직원은 이내 깃에 달린 마이크로 소통하더니 아마누마와 치사카를 대공연장 안쪽으로 안내했다. 아마누마는 치사카를 돌아봤고, 치사카 또한 아마누마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오케스트라를 수용하는 대공연장답게 홀부터 굉장히 넓었다. 천장의 불은 은은하게 점등되어 있었고 홀에는 빈 의자가 이내 들어올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수만큼 정렬되어 있었다. 좌석에는 천천히 사람들이 빈 곳을 채워나갔다. 아마누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가족들, 친구, 연인.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공연에 대한 얘기를 하는 소리들이 두런두런 들려왔다. 그들은 별다른 말없이 지정된 좌석에 앉았다. 공연 시작 시간은 곧 다가왔고 사회자가 천천히 걸어들어와 짧은 안내 타임을 가졌다. 아마누마는 치사카를 바라봤다. 불은 이제 하나, 둘 점멸하며 사위를 어둡게 만들었으니 그녀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그녀는 치사카를 보며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윽고 따라붙은 생각은 뭔가 치사카가 망설이는 게 있다면, 혹은 자신감이 없어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때는 자신처럼 툭 털어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조명 드넓은 무대만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 사이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일렬로 줄지어 맞춰 들어와 각자의 악기를 들고 착석한다.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안내 문구가 길거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간중간 곡을 안내하는 불필요한 것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순간들에는 오케스트라 단원, 악기의 선율, 그리고 청자. 오직 그렇게만이 공간을 채운다. 사방은 이내 둔중한 침묵으로 가득 찼고 지휘자의 손이 하늘을 향해 치솟는다. 그 손이 선호를 그리며 내려오는 순간, 활시위가 뿜어내는 매끄러운 소리와 함께 연주가 시작됐다.

[구분선]

생각보다 공연은 금방 끝이 났다. 아니, 순식간에 지나갔다는 말이 더 가까울까. 애초에 아마누마는 길거리 버스킹이나 소규모 공연, 연극을 보러 다닌 일은 있어도 대규모 합주를 보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생각보다 초반은 선율에 심장이 다 선득해졌다. 말없이, 노래 없이 오직 악기의 소리로만 이렇게 큰 공간이 가득 찰 수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게 됐다. 아마누마는 공연장을 나와 천천히 건물 밖으로 걸음했다. 흘긋, 바라본 시선에는 언제나와 비슷한 치사카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공연 어땠어? 너… 이런 음악 쪽 좋아하지 않았나.”

“안 그래도 지역 순회한다고 해서 관심은 좀 있었지…. 티켓 보여줬을 때는 솔직히 잘 됐다고 생각했어. 웬일로 네가 이런걸? 싶긴 한데.”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하는데, 그거… 내가 산 건 아니야.”

“그럼?”

“저번에 연출 과제가 있다고 했잖아. 과제 겸 갔던 카페에서 이벤트, 하더라고. 그래서…, 난 안 하겠다고 했는데, 조장이 너무 적극적이라 홧김에 응모한 거야. 그게 운 좋게 당첨된 거고.”

“그럼 그렇지. 근데….”

두런두런, 아마누마와 치사카도 공연이 끝난 열기를 소소한 말들로 뱉어냈다. 문장이 길어질 때마다 입김이 허공으로 허옇게 피어올랐다. 치사카의 시선이 아마누마에게 향했다.

“그럼 왜 굳이 같이 보러왔냐. 너…, 사람 많은 데도 질색하잖아.”

신발이 잔디를 즈려 밟는다. 굳이 아마누마는 조성된 정원의 길로 걸어갔고, 치사카는 그 옆의 빗겨나간 잔디길로 걸어갔다. 아마누마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왜 치사카 케이랑 보러왔냐니. 그냥. 그냥, 이라는 말로는 왜인지 지금은 대답해선 안 될 거 같았다. 치사카의 표정이 그랬다.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저 시선이. 아마누마는 잠깐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속이 다 간질간질했다. 답답하면서도, 간질간질하면서도, 그냥 시원하게 말해버리자, 그런 생각.

“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끔, 모르겠거든. 닮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얘기해보면 우리는 은근하게… 다른 구석도 많아.”

“…갑자기?”

“…그러니까, 들어봐. 게다가 넌 네 얘기도 잘 안 하잖아. 내, 내 얘기는 그렇게 잘만 물으면서…, 내가 고민이 많거나 속이 답답할 때, 너는 형편 좋게 잘도 얘기해주잖아.”

아마누마는 팔에 얹어진 머플러를 꼭 쥐었다. 그래, 이건 그냥이라고 하기에는 참 복잡하다. 그런 단순한 두 음절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 치사카 케이를 모르던 아마누마 카오리는 어쩌면, 평생 들어보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오늘의 연주.

“네가 저번에 이 오케스트라 공연 영상을 봤던 건 알아. 예매를 알아봤던 것도 알고. 그리고…, 최근에 연습실에서 과제를 하고 나오면 유난히 더 힘들어 보이는 것도 알고. 저번에 만났을 때는 꽤, 아니 많이, 까칠하게 굴었던 것도…….”

“…야, 미안하다니까. 근데, 그걸로 풀 죽을 것까진 없잖아.”

“누누히 말하지만 풀, 안 죽었거든…?! 그냥 대답이 먹, 먹힌 거야. 아무튼….”

아마누마는 새삼 고개를 젖혔다. 하늘이 새카맸다. 그런데도 떠오르는 건 어두웠던 천장에 공연 홀을 달처럼 비추던 조명, 아직도 귓가를 맴돌던 음들의 합주. 그 악기들의 소리, 그 모두가 절박했을까?

“그냥 평소처럼… 내 얘기를 할테니까 그러려니 들어. 나도 전공 전하기 전에는 고민 많았어. 지금 연출에 누군가처럼 눈물 흘릴만큼 열정적인 건 아냐. 혹은, 누군가처럼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뭐……, 그래서?”

“근데 있잖아. 재밌어, 요즘은. 그냥 연출하는 게…, 내 느낌이 가는 대로 계획하고 작품을 표현한다는 게. 그냥 재밌어.”

“……그러냐. 하긴, 넌 연극부 때도 연출은 점차 나아졌으니까. 남들 다 그만둘 때 혼자 고군분투하는 편이기도 했고.”

“그랬지. 그래서 지금도 관두지 못하는 거고.”

아마누마는 입술을 살짝 짓씹었다. 순간 혈색이 돌면서, 따뜻한 기운이 일순 퍼져갔다. 표정은 그다지 결연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평소랑 비슷하다고 봐도 좋았다.

“네가 그랬잖아, 두고 본다고. 나 그렇게 생각했더니 뭐랄까. 오기가 생겼어.”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재미를 느꼇을지도 모른다. 수십 명의 기대 같은 건 부담스러워. 나를 멋대로 생각하고 재단하는 시선들에 그다지 단단해지지도 못해. 그런데, 한 명 정도는. 한 명쯤은 괜찮잖아. 아마누마는 시려오는 입술을 짓씹고 웃었다. 얇은 숨이 하얗게 부서진다. 아, 지금 이순간에 그냥 폭설이 내려버리면 참, 꼴이 재밌을텐데.

“난 네가 내는 소리 듣기 좋다고 생각해. 듣고 있으면 이유 모르게 편안해.”

“…왜? 어떤 점에서?”

“뭐어, 네가 이유 없이 짜증 났다고 했던 거랑, 비슷할까….”

“언제적 걸 따라하는 거야….”

“설명하기 좀 그래. 낯간지럽잖아.”

“하여간.”

치사카는 유독 조용하게 아마누마의 얘기들을 귀담아 들었다. 아마누마는 치사카의 이런 태도에 항상 입이 약해지곤 했다. 세상 깐깐하게 막아낼 거처럼 생겨서, 제가 하는 서투르고 두서 없는 속 얘기들은 항상 그냥 묵묵히 듣고 있는게. 건성건성 듣는 것 같아 보이면서도 툭 내뱉는 한마디는 직설적이게도 아마누마를 두둔하는 방향 쪽으로 향한다는 게. 그리고 저 얼굴에 그 소리는 아무래도 정말 입발린 소리처럼은, 안 들린다는 게. 아마누마의 전공에 치사카의 공적이 아예 없지는 않다는 것 모두가. 그러니까 아마누마는 이번엔, 치사카를 조금이나마 따라해보고 싶었다. 이 수많은, 복잡한 이유들을 모두 구구절절 토로해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그에게 닿기를 바랐다.

치사카는 잠시 묵묵하게 걸어가더니 입가를 가렸다. 일순 어깨를 들썩이기도 했다. 물론 걸음을 늦추어 발맞춰 가던 아마누마가 당황한 것은 덤이었다.

“뭐야, 너….”

들썩이던 어깨는 점차 반동을 크게 하고, 아무 소리도 없던 곳엔 이제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소음이 들어찬다. 그건 분명한 웃음 소리였다.

“아…, 하하, 너 그러니까…, 그런 거야? 그래서 며칠 동안 라인도 뜸했냐.”

“뭐, 뭐가.”

“하여간, 넌 생각이, 너무 많아서 탈이라니까…….”

“야, 그러니까 뭐냐고. 또, 또 혼자서 웃네…!”

“그렇지만 너 방금 네 표정 못 봤지.”

“내 표정이 어땠는데 그래. …아닌데, 별로, 이상한 표정은 아닐…텐데.”

치사카는 한참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 건지, 추위에 붉어진 뺨이 당길 정도였다. 저 작은 머리통으로 대체 어디의 최악까지 상상했을지, 그려지면서도 어쩌면 잘 모를 영역이라. 어떤 생각의 물꼬 끝에 저 말이 나오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삽질을 했을지. 치사카는 이내 허리를 폈다. 간만에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무거웠던 머리가 일순, 맑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 내쉰다.

“방금 했던 말 또 해봐.”

“…뭐. 내 표정이, 어땠는데, 그래…?”

“…야, 더는 안 돼. 배 아프다고.”

“아니, 그러니까 뭘….”

“연주 말이야. 내가 내는 소리.”

“듣기 좋다고?”

그래. 치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정적이지 않다고? 그건, 치사카 케이라고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세상을 감동 시키겠다는 거창한 목표따위 없다. 절박하게 무언가에 매달리고 싶다는 필사적인 마음도 없다. 그렇지만.

“두 명 정도는 좋아한다는 거네. 그럼 됐다.”

세상에 자신이 만들어낸 무언가를 누군가는 좋아해준다. 누군가는 그 소리를 듣고 기억해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아직 제 적성이 맞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재미있는지도, 사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마누마의 대답만으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일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소바나 먹으러 갈까. 배고프지 않냐.”

“저번에 갔던 거긴가?”

“아니, 이번에는 번화가에 새로 생긴 집. 맛있을려나….”

“소바가 맛 없어봤자…….”

두런두런 말소리가 새어나간다. 치사카와 아마누마의 얼굴이 마주 본다. 맛, 없을려나. 모르지. 먹어보지 않으면. 이제 웃음은 한 명이 아닌 둘이었다.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 확신할 수도, 단정지을 수 있는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괜찮지 않을까. 절박한 사람들만이 내일을 살아갈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삶에 정당한 이유란 것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경험하고, 어쩌면 삶에 재미있는 이유를 하나라도 찾을 수 있다면. 나의 내일을 기대해줄 누군가가, 그러니까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괜찮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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